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다섯 세기를 겹겹이 쌓은 도시
옛 항구에서 황금 불꽃 탑까지
자카르타(Jakarta)에 처음 내리면 끝없이 이어지는 고가도로와 고층 빌딩부터 눈에 들어와요. 그런데 그 아래에는 여러 번 이름을 바꿔 온 항구 도시의 시간이 겹겹이 남아 있어요. 순다 왕국의 항구 클라파, 16세기에 파타힐라가 붙인 이름 자야카르타, 네덜란드 식민 시대의 바타비아, 그리고 1942년 일본군이 들어와 바꾼 지금의 이름 자카르타까지요. 북쪽 옛 항구에서 출발해 도심의 광장을 지나 밤의 음식 골목까지, 그 시간의 층을 차례로 따라가 볼게요.
코타 투아 — 바타비아가 남긴 광장
북쪽의 코타 투아(Kota Tua)는 네덜란드가 성채와 운하, 관청을 지었던 약 1.3㎢의 옛 시가지예요. 1621년 네덜란드는 이곳에 식민 행정을 세우고 도시에 '스타드 바타비아(Stad Batavia)'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중심은 파타힐라 광장(Taman Fatahillah)이에요. 광장을 마주한 흰 건물은 1707~1712년에 지은 옛 바타비아 시청으로, 1974년부터 자카르타 역사박물관(Museum Sejarah Jakarta)이 되었어요. 광장 서쪽 와양 박물관(Museum Wayang)은 1640년 교회가 있던 자리에 1912년 새로 지은 건물이고, 안에는 인형극 와양의 인형이 모여 있어요. 동쪽 미술·도자기 박물관(Museum Seni Rupa dan Keramik)의 건물은 1866~1870년에 지어졌어요. 광장을 한 바퀴 돌면 18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바타비아에 들어선 건물을 차례로 만나게 돼요.
순다 클라파 — 도시가 시작된 항구
코타 투아에서 조금 더 북쪽으로 가면 순다 클라파(Sunda Kelapa) 항구가 나와요. 12세기부터 쓰인 순다 왕국의 주요 항구예요. 포르투갈 상인들의 교역 중심이던 이 항구를 1527년 6월 22일 파타힐라가 공격해 이름을 자야카르타(Jayakarta)로 바꿨고, 그날은 지금도 자카르타의 생일로 기념돼요. 항구는 여전히 섬과 섬 사이를 오가는 전통 선박이 드나드는 곳이에요. 부두에 나란히 선 배들을 따라 걷다가 길 건너 바하리 해양박물관(Museum Bahari)에 들러 보세요. 1652~1771년에 걸쳐 지은 이 건물은 1977년부터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어요.
므르데카 광장 — 황금 불꽃과 두 종교 건물
도심의 므르데카 광장(Lapangan Merdeka) 한가운데에는 모나스(Monas, 국립기념탑)가 서 있어요. 이탈리아산 대리석을 두른 높이 132m의 오벨리스크로, 인도네시아의 독립 투쟁을 상징해요. 꼭대기에는 높이 14m의 불꽃 조형이 있는데, 구리 14.5톤으로 만들고 순금 50kg을 입힌 것이에요. 광장 북동쪽 이스티클랄 모스크(Masjid Istiqlal)의 이름은 '독립'이라는 뜻이에요. 설계 공모에서 1등을 한 건축가 실라반(Silaban)은 모나스 설계에도 참여했어요. 1978년 문을 연 이 모스크에는 최대 20만 명이 함께 예배할 수 있어요. 길 건너에는 1901년 봉헌된 신고딕 양식의 자카르타 대성당(Gereja Katedral Jakarta)이 마주 서 있고, 두 건물은 지하 통로로 이어져 있어요. 통로의 이름은 '실라투라흐미 터널'로, 실라투라흐미는 인도네시아어로 '우정의 끈'이라는 뜻이랍니다.
글로독 — 성벽 밖에서 자란 차이나타운
코타 투아 남쪽의 글로독(Glodok)은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큰 차이나타운으로 꼽혀요. 이 동네의 시작에는 아픈 역사가 있어요. 1740년 '게게르 파치난(Geger Pacinan)' 사건 뒤 네덜란드 식민 정부가 화교들을 바타비아 성벽 밖에 살게 했고, 그곳이 지금의 글로독으로 자랐어요. 자카르타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 사원인 다르마 박티 사원(Vihara Dharma Bhakti)에는 향 연기가 천천히 피어올라요. 사원을 나와 글로리아 골목(Gang Gloria)부터 판초란 티하우스(Pantjoran Tea House)까지 걸으면 먹을거리 가게가 줄지어 있어요.
브타위의 맛과 밤 골목
자카르타의 향토 음식을 브타위(Betawi) 음식이라고 불러요. 하나만 고른다면 크락 텔로르(kerak telor)예요. 찹쌀에 오리알이나 달걀, 볶은 코코넛(스룬뎅), 말린 새우를 더해 부치는데, '크락'은 눌어붙어 굳은 층을 뜻하는 말이에요. 노점에서 갓 부친 한 장을 받아 가장자리부터 떼어 먹어 보세요. 절인 갓·오이·숙주에 새콤달콤하고 매콤한 땅콩 소스를 버무린 아시난 브타위(asinan Betawi)를 곁들여도 좋아요. 저녁에는 식당과 노점이 모인 사방 거리(Jalan Sabang)나 프체농안(Pecenongan)으로 가 보세요. 프체농안 거리에는 저녁 6시부터 새벽 3시까지 노점과 식당이 길을 따라 늘어서요. 브타위 문화를 더 보고 싶다면 남쪽 자가카르사의 스투 바바칸(Setu Babakan) 브타위 문화마을이 좋아요. 호숫가를 따라 걸으며 브타위 전통 가옥을 볼 수 있고, 브타위 공연도 정기적으로 열려요.
움직이는 법 — 막히는 도로 위와 아래
자카르타의 도로는 자주 막히지만, 철도와 전용 차로를 달리는 버스는 정체의 영향을 덜 받아요. MRT는 남쪽 르박 불루스(Lebak Bulus)에서 도심 분다란 HI(Bundaran HI)까지 남북으로 달리고,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간선급행버스(BRT)망인 트랜스자카르타(Transjakarta)는 버스 전용 차로를 중심으로 도시 거의 모든 곳에 닿아요. 트랜스자카르타는 'BW1 자카르타 역사', 'BW2 모나스 익스플로러' 같은 관광버스 노선도 운영해요. MRT 분다란 HI 역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면 원형 교차로 한가운데 '환영(Selamat Datang)' 기념상이 서 있어요. 1962년 국빈을 맞이하려고 세운 기념상이에요.
추천 2박 3일 일정
Day 1 — 순다 클라파 항구·바하리 해양박물관 → 코타 투아(파타힐라 광장·자카르타 역사박물관·와양 박물관) → 글로독 글로리아 골목 Day 2 — 므르데카 광장의 모나스 → 이스티클랄 모스크·자카르타 대성당 → 분다란 HI 환영 기념상 → 프체농안 거리에서 저녁 Day 3 — 남쪽 스투 바바칸 브타위 문화마을 → 사방 거리에서 마지막 저녁
- 추천 시즌
- 6~9월(건기, 비가 가장 적음)
- 추천 기간
- 2~3일
꼭 먹어볼 것
- 크락 텔로르 (찹쌀·오리알 브타위 부침)
- 소토 브타위 (코코넛 밀크 소고기 수프)
- 아시난 브타위 (땅콩 소스 채소 절임)
- 나시 우둑 (코코넛 밀크로 지은 밥)
실용 팁
- 트랜스자카르타·MRT·LRT는 작링코(JakLingko)가 지원하는 은행 전자화폐 카드나 작링코 앱 QR 승차권으로 타세요. 카드를 바꾸지 않고 구간마다 탭인·탭아웃하며 3시간(180분) 안에 갈아타면 한 번의 이동 요금은 최대 Rp10,000이고, 개찰구에서 그보다 더 빠져나간 금액은 작링코 앱에서 캐시백으로 돌려받아요.
- 매주 일요일 6~11시에는 수디르만~탐린 대로(분다란 HI~분다란 스나얀)가 차 없는 거리로 바뀌어요. 이 시간에 그 일대에 묵는다면 택시보다 걷거나 MRT를 타는 편이 나아요.
- 레스토랑·카페 계산서에는 식음료세 10%가 더해져요. 월 매출 4,200만 루피아(Rp42,000,000) 이하의 작은 가게는 이 세금이 면제라, 노점·와룽에서는 대개 적힌 값 그대로 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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