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호치민
목욕탕 의자에 앉아 마시는 연유 커피
껌떰으로 열고 고둥으로 닫는 하루
아침 일곱 시, 길가에 놓인 낮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으면 금속 필터 핀(phin)에서 커피가 한 방울씩 떨어져요. 그 앞으로는 오토바이가 쉬지 않고 흘러가고요. 옛 이름 사이공(Sài Gòn)으로도 익숙한 호치민은 베트남 경제의 심장이라 불리는 도시예요. 프랑스 시절의 대성당, 1975년 4월 30일의 기억을 간직한 독립궁, 중국계 동네 쩌런, 해가 지면 깨어나는 고둥 요리 거리가 한 도시 안에 겹쳐 있어요. 여기서는 명소를 다 훑기보다 그중 몇 장면에 조금 오래 머물러 볼게요.
동커이 거리에서 응우옌후에까지
도심 산책은 동커이 거리(Đồng Khởi)에서 시작하면 편해요. 거리 끝머리에 두 첨탑을 올린 사이공 노트르담 대성당(Nhà thờ Đức Bà)이 서 있고, 그 맞은편이 중앙우체국(Bưu điện Trung tâm Sài Gòn)이에요. 대성당을 지은 자재는 모두 프랑스에서 들여왔어요. 다만 대성당은 2017년 7월부터 대규모 보수 공사가 이어지고 있어요. 2026년 3월에야 첨탑 꼭대기에 금도금 십자가 두 개가 다시 올라갔고, 완공 목표는 2027년 말로 잡혀 있지만 공사비가 마련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어요. 건물 둘레에 공사 가림막이 남아 있을 수 있으니, 안까지 들어가 보고 싶다면 내부 관람이 되는지 현지에서 먼저 확인하세요. 한 블록 옆으로 건너가면 시청 앞에서 사이공강의 박당 부두(Bến Bạch Đằng)까지 이어지는 응우옌후에 보행자 거리(Nguyễn Huệ)가 나와요. 해 질 녘이 가장 북적이는 시간이에요. 거리 중간의 낡은 아파트 '42 응우옌후에(42 Nguyễn Huệ)'는 층마다 온갖 가게가 빼곡해서, 문을 하나씩 열어 보며 오르내리는 재미가 있어요.
독립궁, 1975년 4월 30일 오전
독립궁(Dinh Độc Lập)은 1868년 프랑스가 짓기 시작한 노로돔 궁 자리에 1962년 7월 공사를 시작해 1966년 10월 낙성식을 연 건물이에요. 남베트남 대통령이 살면서 집무를 보던 곳이죠. 설계는 베트남인 최초로 로마대상(Prix de Rome) 건축 부문을 받은 응오비엣투(Ngô Viết Thụ)가 맡았어요. 2층을 두른 돌 가림막은 대나무 마디를 본떠 만들었고, 건물 배치는 '길할 길(吉)' 자 모양이에요. 1975년 4월 30일 오전 10시 45분, 탱크 843호가 옆문을 부수고 들어왔고 뒤이어 390호가 정문을 들이받고 마당으로 곧장 들어왔어요. 지금은 붉은 카펫이 깔린 홀과 회의실을 지나 지하의 옛 작전 지휘실과 상황실까지 둘러볼 수 있어요. 매일 07:00~18:00에 열고 성인 입장료는 80,000동이에요. 나와서는 궁 앞 공원을 둘러싼 카페에서 연유를 넣은 아이스커피, 카페 쓰어 다(Cà phê sữa đá) 한 잔으로 쉬어 가세요.
전쟁증적박물관
독립궁에서 멀지 않은 전쟁증적박물관(Bảo tàng Chứng tích Chiến tranh)은 3층 건물에 유물과 사진을 빼곡히 모아 둔 곳이에요. 마당에는 퇴역한 비행기와 탱크, 폭탄, 헬리콥터가 놓여 있어요. 실내에는 퓰리처상을 받은 사진 「전쟁의 공포(The Terror of War)」를 비롯해 참혹한 장면을 담은 사진이 많아요. 아이와 함께라면 이 점을 미리 알고 들어가시는 게 좋아요.
아침은 껌떰, 밤은 고둥
호치민 사람에게 아침으로 뭘 먹느냐고 물으면 대개 껌떰(Cơm tấm)이라고 답해요. 껌떰은 이 도시에서 태어난 몇 안 되는 음식이에요. 옛날에는 깨진 쌀알, 곧 싸라기를 팔 수 없어서 농부들이 모아 두었다가 먹었대요. 베트남판 신데렐라 이야기의 주인공 이름 '떰(Tấm)'도 이 싸라기에서 왔어요. 꿀을 발라 구운 돼지갈비와 달걀프라이를 얹고, 달콤한 느억맘 소스를 넉넉히 부어 먹어요. 낮에는 수레에서 파는 든든한 후띠에우 남방(Hủ tiếu Nam Vang) 한 그릇이나, 차슈와 수제 파테를 채운 반미(Bánh mì)를 드셔 보세요. '남방'은 캄보디아 프놈펜을 이르는 베트남어 이름이에요. 해가 지면 빈카인 거리(Vĩnh Khánh)가 깨어나요. 저녁 여섯 시 무렵이면 맥주를 앞에 둔 사람들로 거리가 가득 차요. 고둥(Ốc)은 종류가 많게는 스무 가지에 이르고, 버터 마늘 볶음, 소금 고추 구이, 코코넛 밀크 조림처럼 조리법도 제각각이에요.
아침 공원과 쩌런
따오단 공원(Công viên Tao Đàn)에서는 아침마다 사람들이 나무 그늘 아래 모여 운동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제기를 차요. 공원 안에는 작은 불교 사원도 하나 있어요. 오후에는 중국계 동네 쩌런(Chợ Lớn)으로 넘어가 보세요. 걸어서 둘러보기 좋은 동네예요. 거대한 도매시장 빈떠이 시장(Chợ Bình Tây)을 구경한 뒤에는 바다의 여신을 모신 티엔허우 사원(Chùa Bà Thiên Hậu)에 들러 보세요. 구석구석 눈여겨볼 것이 많은 사원이에요.
하루는 꾸찌 터널로
하루쯤은 도시 북서쪽 끝자락의 꾸찌 터널(Địa đạo Củ Chi)에 다녀와 보세요. 베트남 전쟁 때 베트콩이 미군과 남베트남군을 피해 오가던 땅굴로, 전체 길이가 250km를 넘어요. 관람 입구는 벤딘(Bến Đình)과 벤즈억(Bến Dược) 두 곳이고, 실제로 굴 안에 들어가 볼 수 있어요. 흙이 묻는 것까지 체험의 일부이니 더러워져도 괜찮은 옷을 입고 가세요.
추천 3박 4일 일정
Day 1 — 떤선녓 공항 도착 → 숙소 체크인 → 해 질 녘 응우옌후에 보행자 거리 → 42 응우옌후에 아파트 가게 구경 Day 2 — 껌떰 아침 → 보수 공사 중인 대성당 외관과 중앙우체국 → 독립궁 → 공원 카페에서 카페 쓰어 다 → 전쟁증적박물관 → 빈카인 거리에서 고둥 요리로 저녁 Day 3 — 꾸찌 터널 → 벤탄 시장(Chợ Bến Thành) 안쪽 끝 먹거리 노점에서 반쎄오·반미 → 길가 노점이 많이 나오는 저녁에 오토바이 투어 Day 4 — 아침 따오단 공원 → 쩌런 빈떠이 시장·티엔허우 사원 → 공항
- 추천 시즌
- 12~4월(건기·맑고 덜 습함)
- 추천 기간
- 3~4일
꼭 먹어볼 것
- 껌떰 (싸라기밥과 구운 돼지갈비)
- 반미 (차슈·파테를 채운 바게트)
- 후띠에우 남방 (프놈펜식 쌀국수)
- 옥 (빈카인 거리의 고둥 요리)
실용 팁
- 한국·일본 등 일부 나라 여권이면 최대 45일까지 무비자로 머물 수 있어요. 한국 여권으로 관광하러 간다면 출국 항공권 예약도 갖고 있어야 해요. 더 오래 머물거나 무비자 대상이 아니라면 90일 복수 입국 전자비자를 받으면 돼요.
- 떤선녓 국제공항(Tân Sơn Nhất)은 도심에서 약 7km로 가까워요. 택시는 회사마다 요금 체계가 달라서, 앱으로 부르는 차를 쓰면 바가지 걱정을 덜 수 있어요.
- 2025년 행정 개편으로 호치민시는 빈즈엉·바리어붕따우와 합쳐졌고, 시 아래의 군(Quận) 단계가 없어졌어요. 새 주소에는 '1군' 같은 이름이 빠지지만 안내서와 가게 주소에는 옛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으니, 숙소 위치는 지도 앱의 핀으로 확인해 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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