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
괌
리프가 감싼 잔잔한 투몬 바다
해변 너머 차모로의 오랜 이야기
괌의 아침은 대개 투몬 만에서 시작돼요. 먼바다에서 밀려온 파도는 리프 끝에서 하얗게 부서지고, 그 안쪽 얕은 물은 호수처럼 잔잔하답니다. 그런데 이 섬을 바다로만 기억하고 돌아오면 아쉬운 게 많아요. 차로 조금만 내려가면 스페인 총독 관저가 서 있던 광장, 돌기둥 위에 집을 올렸던 차모로 사람들의 흔적, 전쟁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긴 언덕 위 기념벽이 차례로 나오거든요. 이 글은 투몬의 바다에서 출발해 수도 하갓냐(Hagåtña)와 남부 해안 마을까지, 섬에 겹겹이 쌓인 시간을 따라가 봅니다.
투몬 만 — 리프 안쪽의 바다
투몬 만(Tumon Bay)은 해변을 따라 호텔이 줄지어 선 괌 관광의 중심지예요. 모래사장에서 바다 쪽으로 한참 걸어 들어가도 물이 얕고, 멀리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선이 리프의 끝이에요. 이 만은 1997년 지정된 괌의 해양보호구역 다섯 곳 가운데 하나예요(본격 단속은 2001년부터). 괌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보호구역의 리프는 낚시 제한이 없는 리프보다 물고기 양이 전반적으로 많다고 해요. 물안경을 쓰고 얼굴만 담가도 산호 사이를 오가는 물고기를 볼 수 있어요. 해가 기울 무렵에는 서쪽을 향한 만 위로 하늘이 천천히 물들어요.
사랑의 절벽에 남은 전설
투몬 만 북쪽 끝, 바다 위 370~400피트(약 113~122m) 높이의 절벽이 사랑의 절벽이에요. 차모로어 이름 푼탄 도스 아만테스(Puntan Dos Amantes)는 '두 연인의 곶'이라는 뜻이에요. 전설은 스페인 시대를 배경으로 해요. 부유한 스페인 상인 아버지와 차모로 족장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여인이, 아버지가 정한 스페인 장교와의 혼인을 피해 달아났어요. 그 뒤 한 청년과 사랑에 빠졌지만 결국 아버지에게 들켰고, 뒤쫓아 온 군인들에게 절벽 끝까지 몰리자 두 사람은 서로의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고 바다로 뛰어내렸다고 전해져요. 1819년 괌에 들른 프랑스 탐험가 루이 드 프레시네가 이 전설을 기록으로 남겼어요. 지금은 연인 동상 옆 '하트 자물쇠 벽'에 여행자들이 자물쇠를 걸어 두고 가요.
하갓냐 — 스페인 시대의 광장
투몬에서 차로 조금 내려가면 수도 하갓냐예요. 하갓냐 유산 산책로는 시내를 내려다보는 산타 아게다 요새(Fort Santa Agueda)에서 언덕을 내려와 스페인 광장(Plaza de España)을 지나요. 광장은 스페인 통치기(1668~1898)에 총독 관저가 서 있던 자리로, 관저 대부분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섬을 되찾으려는 포격으로 무너졌어요. 옛 스페인 창고(알마센) 입구였던 석회암 아치, 총독 가족이 오후 간식과 초콜릿을 즐기던 '초콜릿 하우스', 손님들과 바람을 쐬던 테라스 '아소테아(Azotea)'가 남아 있어요. 광장 옆 둘세 놈브레 데 마리아 대성당(Dulce Nombre de Maria Cathedral-Basilica)은 1669~1670년 산 비토레스 신부의 지휘로 차모로 사람들이 첫 목조 예배당을 지은 자리로 알려져 있고, 해마다 12월 8일이면 섬의 수호성인 산타 마리안 카말렌을 기리는 행렬이 열려요. 근처 라테 스톤 공원(Latte Stone Park)의 '라테' 여덟 개는 고대 차모로 사람들이 나무와 풀로 지은 집을 떠받치던 돌기둥과 머릿돌이에요. 메푸와 페나 지역에 군 기지가 들어설 때 군이 이곳으로 옮겨 놓았답니다. 바닷가의 파세오 데 수산나(Paseo de Susanna)는 전쟁 잔해를 쌓아 만든 땅이에요.
차모로의 잔칫상
차모로(CHamoru) 사람들은 적어도 3,500년 전부터 마리아나 제도에 뿌리를 두고 살아왔어요. 이 섬의 맛은 마을 잔치(피에스타) 상차림에 모여 있어요. 상에는 레드 라이스가 맨 먼저 놓이는데, 밥이 오르기 전에 상을 축복하고 여는 일은 드물 정도예요. 아초테 씨앗을 우린 물로 지어 주황빛이 도는 밥이랍니다. 그 곁으로 레몬즙을 바탕으로 버무린 켈라구엔과 바비큐가 놓이고, 끼얹어 먹기도 하고 찍어 먹기도 하는 매운 소스 피나데네(fina'denne')가 빠지지 않아요. 돌아가는 손님에게 음식을 싸 가라고 권하는 '발루탄(balutan)'까지가 잔치예요. 여행자가 이 식탁에 가장 가까이 앉을 수 있는 곳은 하갓냐의 차모로 빌리지(Chamorro Village)예요. 수요일 밤 야시장이 열리면 바비큐 연기가 골목을 채우고, 가운데 마당에서는 어른도 아이도 함께 춤을 춰요. 농산물과 공예품 좌판 사이로 물소(카라바오) 타기 체험도 있어요.
1944년 7월 21일을 기억하는 섬
괌에서 1년 중 가장 큰 공휴일은 7월 21일 해방 기념일이에요. 1941년 12월 10일부터 2년 반 동안 이어진 일본군 점령기에 남자들은 비행장과 방어 시설 공사에, 여자와 아이들은 군대에 보낼 식량을 기르는 밭일에 강제로 동원됐어요. 1944년 7월 21일 미군이 상륙하면서 21일간의 탈환전이 시작됐고, 해마다 이날이면 하갓냐의 마린 코어 드라이브(Marine Corps Drive)를 따라 큰 퍼레이드가 지나가요. 그 상륙 해변을 내려다보는 언덕에 아산 만 전망대(Asan Bay Overlook)가 있어요. 기념벽에는 전쟁 중 숨진 괌 주민 1,170명과, 점령과 전투 속에서 잔혹 행위를 겪은 1만 4,721명의 이름이 미군 전사자들의 이름과 함께 새겨져 있어요. 이 일대는 미국 국립공원청이 관리하는 태평양 전쟁 국립역사공원(War in the Pacific National Historical Park)에 속해요.
남부 해안 — 마젤란 기념비와 옛 마을
하갓냐에서 해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리조트 대신 작은 마을과 성당이 이어져요. 서남쪽 우마탁(Umatac) 만에는 1521년 마젤란의 상륙을 기리는 오벨리스크가 서 있어요. 다만 상륙 지점을 두고는 다른 주장도 있어요. 마을에는 스페인 시대의 요새 몇 곳과 포대가 남아 있어요.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돌면 이나라한(Inarajan)이 나와요. 1680년 스페인이 성 요셉 성당과 함께 세운 마을로, 성당을 중심에 두고 스페인식으로 설계됐어요. 스페인 시대와 1900년대 초 미국 시대의 양식이 섞인 옛집들이 마을 곳곳에 남아 있어요.
- 추천 시즌
- 12~6월(건기)
- 추천 기간
- 3~5일
꼭 먹어볼 것
- 레드 라이스 (아초테 물로 지은 주황빛 밥)
- 치킨 켈라구엔 (레몬즙에 버무린 닭고기)
- 차모로 바비큐 (수요일 밤 차모로 빌리지)
- 피나데네 (밥과 고기에 끼얹는 매운 소스)
실용 팁
- 괌-CNMI 비자 면제 대상(한국·일본 포함)이라면 탑승 전에 괌·북마리아나 전용 G-CNMI ETA(최대 45일 체류)를 승인받아야 해요. ESTA(최대 90일)나 미국 B1/B2 비자가 이미 있으면 따로 받지 않아도 돼요. 세관 신고는 전자 신고서(Guam EDF)로만 할 수 있어요. 도착 72시간 전부터 제출할 수 있고, 가족은 한 장이면 돼요.
- 렌터카로 다닌다면 비 오는 날 속도를 줄이세요. 괌 도로에는 산호가 섞여 있어 젖으면 미끄럽고 제동 거리가 길어진다고 외교부가 안내해요. 주차한 차의 창문을 깨고 물건을 가져가는 사건도 섬 전역에서 늘고 있다고 하니, 차 안에는 짐을 두지 마세요.
- 1년 강수량의 4분의 3이 7~11월 우기에 내리고, 섬은 해마다 평균 세 번꼴로 태풍의 영향을 받아요. 이 시기에 간다면 항공권과 숙소를 일정 변경이 되는 조건으로 잡아 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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